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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플라워 킬링 문

by 호피뇽 2026.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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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워 킬링 문 : 로튼 93%가 증명한 거장의 숨결


01. 기름진 땅 위로 흐르는 핏빛 탐욕의 서사

영화는 1920년대 오클라호마, 석유로 인해 막대한 부를 거머쥔 오세이지족의 땅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갑작스러운 풍요는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되어 돌아왔고, 그들의 재산을 갈취하려는 백인들의 잔혹한 음모가 서서히 고개를 들죠. 전쟁에서 돌아온 어니스트 버크하트는 삼촌 윌리엄 헤일의 회유에 따라 오세이지 여인 몰리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결합 이면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끔찍한 연쇄 살인과 착취가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범죄 스릴러로 치부하기엔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슬픔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습니다. 한 가족이 무너지고 한 민족이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과정을 카메라는 아주 느릿하면서도 집요하게 쫓아갑니다. 몰리 역의 릴리 글래드스톤이 보여주는 정적인 연기는 백마디 말보다 더 강렬한 비명을 지르고 있으며, 어니스트의 유약함과 헤일의 치밀한 악의는 인간의 탐욕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증명합니다. 영화가 흐르는 내내 흐르는 기이하고도 묵직한 공기는 관객을 압도하며, 우리가 외면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를 강제로 펼쳐 보게 만듭니다.

02. 스크린 너머, 거장과 배우들이 바친 경외의 시간들

이 작품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으로서 얼마나 날카로운 감각을 지녔인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제작 비하인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시나리오의 전면적인 수정 과정이죠. 초기 대본은 FBI의 수사 과정에 초점을 맞춘 전형적인 수사물이었으나, 스코세이지는 오세이지족의 관점과 인간의 내면에 집중하기 위해 대본을 완전히 갈아엎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역할도 수사관에서 가해자인 어니스트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는 영화를 훨씬 입체적이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탁월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또한, 제작진은 실제 오세이지 부족원들을 제작 전반에 참여시켜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의상 하나, 소품 하나에도 그들의 전통과 아픔을 담아내려 노력했고, 덕분에 영화는 픽션을 넘어선 다큐멘터리적인 진실성까지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로튼토마토 93%라는 높은 지수는 단순히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찬사를 넘어, 잊힌 역사에 대한 거장의 예우와 배우들의 혼신의 연기가 빚어낸 경외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분이 넘는 긴 상영 시간 동안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자본이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에 바치는 그들의 숭고한 헌신이었습니다.

03. 40대 영화광이 마주한 잔인하도록 아름다운 진실

어릴 때 비디오 대여점에서 스코세이지의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저 그 화려한 연출과 폭력성에 압도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이를 키우고 삶의 쓴맛과 단맛을 두루 겪은 40대가 되어 이 영화를 보니, 화면 속에 흐르는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상대의 숨통을 조여가는 어니스트의 모순적인 모습에서, 인간관계 속에 숨겨진 위선과 이기심을 발견하고는 한동안 소름이 돋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가끔 과거의 비극을 남의 일처럼 여기며 살아가지만,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느냐고 말이죠. 3시간 26분이라는 긴 시간은 저에게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일종의 수행과도 같았습니다. 거장의 섬세한 손길이 닿은 이 핏빛 대서사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인간이라는 수수께끼'에 대한 보고서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가슴을 후벼 파는, 하지만 결코 눈을 뗄 수 없었던 진한 여운의 영화였습니다.


플라워 킬링 문 영화 포스터 북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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