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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포드 V 페라리

by 호피뇽 2026.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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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V 페라리 : 로튼토마토 92%가 증명한 전율


01. 7000 RPM에서 만나는 진정한 자유의 서사

영화는 1960년대, 매출 부진에 빠진 미국 자동차의 자존심 '포드'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절대 강자 '페라리'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시작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소환된 인물은 전설적인 레이서 출신 디자이너 캐롤 쉘비와 타협을 모르는 괴짜 레이서 켄 마일스죠. 이야기는 단순히 차를 빨리 달리게 만드는 기술적인 과정을 넘어, 거대 기업의 관료주의라는 단단한 벽에 부딪히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두 남자의 뜨거운 우정을 비춥니다.

낮은 차체 안에서 기름때 묻은 얼굴로 서로를 마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투박하고도 아름답습니다. 르망 24시 레이스라는 극한의 환경 속에서, 켄 마일스는 자동차와 하나가 되어 소통하며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려 애씁니다. "7000 RPM, 거기엔 질문도 없고 답만 존재한다"는 대사처럼, 영화는 속도 뒤에 숨겨진 순수한 열망을 집요하게 따라갑니다. 관객은 엔진의 굉음과 함께 심장이 뛰는 경험을 하게 되며, 결국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는 묵직한 줄거리를 마주하게 됩니다.

02. CG를 거부한 리얼리즘, 스크린 뒤의 숨 가쁜 기록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때 '진짜'를 담는 데 집착했습니다. 최근의 여타 블록버스터들이 그린 스크린과 CG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포드 V 페라리>는 실제 트랙 위에서 실제 속도로 달리는 차들을 카메라에 담아냈죠. 제작진은 1966년 당시의 르망 트랙을 재현하기 위해 전 세계를 뒤졌고, 배우들 역시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했습니다. 특히 크리스찬 베일은 켄 마일스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단기간에 엄청난 체중을 감량하며 예민하고 날 선 레이서의 신경질적인 천재성을 몸소 증명해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중 백미는 맷 데이먼과 크리스찬 베일의 호흡입니다. 두 배우는 촬영 현장에서도 극 중 인물들처럼 깊은 신뢰를 쌓았고, 대본에 없던 즉흥적인 감정 교류가 영화 곳곳에 스며들었다고 하네요. 또한, 실제 켄 마일스의 아들이 촬영장을 방문해 아버지의 분신 같은 베일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는 일화는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한 인간의 삶을 복원하려는 진심 어린 시도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정성들이 모여 로튼토마토 92%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하며 평단과 대중의 마음을 동시에 훔친 것이겠죠.

03. 마흔의 길목에서 되짚어본 '나만의 속도'에 대하여

어릴 적 비디오 대여점 귀퉁이에서 자동차 영화를 고르던 소녀는 어느덧 40대가 되어 이 영화를 마주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화려한 레이싱 장면에 열광했겠지만, 지금의 제 눈에는 거대 조직의 압박 속에서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 애쓰는 켄 마일스의 주름진 눈가가 먼저 들어오더군요. 사회생활을 하며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는 우리네 평범한 어른들에게, 자신의 7000 RPM을 찾으라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잊고 지냈던 뜨거운 무언가를 건드리고 지나갑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 노을 진 트랙 위에 남겨진 여운을 보며 저는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르망'을 달리고 있잖아요. 때로는 포드 같은 거대 자본의 횡포에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페라리 같은 범접할 수 없는 벽에 절망하기도 하지만, 결국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내 안의 순수한 엔진 소리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화려한 액션 너머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영화는, 인생의 중반전을 지나가는 저에게 "지금 당신의 속도는 괜찮은가요?"라고 다정하게 묻는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싶은, 참으로 귀한 인생 영화 한 편을 만난 기분입니다.


포드V페라리 영화포스터 북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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