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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파묘

by 호피뇽 2026.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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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로튼토마토 92%) 리뷰

1. 영화 줄거리: 거액의 의뢰와 "겁나 험한 것"의 실체

어느덧 부모님의 건강을 살피고 조상님의 산소를 돌보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일까요? 영화 <파묘>의 시작은 묘하게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그리고 젊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팀을 꾸려 기이한 병을 앓는 집안의 묫자리를 파헤치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채고 '파묘'를 결정하지만, 악지에 자리한 묘를 본 상덕은 직감적으로 불길함을 느낍니다. 결국 관이 열리면서 그 안에 갇혀 있던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그림자가 쏟아져 나옵니다. 단순히 귀신을 쫓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땅 밑에 깊게 박힌 상처를 뽑아내려는 네 전문가의 사투가 숨 가쁘게 펼쳐집니다. 굿판의 격렬한 몸짓과 풍수사의 눈빛 속에서 잊고 지냈던 우리 민족의 근원적인 슬픔을 마주하게 됩니다.

2. 영화 제작 비하인드: 장재현 감독의 집요함과 배우들의 열연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거치며 K-오컬트의 장인이 된 장재현 감독은 <파묘>를 위해 실제 풍수사와 장의사들을 찾아다니며 수년간 취재를 거쳤습니다. 특히 김고은 배우가 굿판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에너지는 무속인들조차 감탄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 치열한 연습의 흔적이 화면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영화 속 배경들이 CG에만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감독은 현실적인 질감을 위해 실제 거대 모델을 제작하고 산속 세트장을 직접 지어 촬영했습니다. 우리가 느꼈던 그 눅눅하고 서늘한 공기는 실제 흙과 나무가 빚어낸 아날로그의 힘이었습니다. 로튼토마토 92%라는 놀라운 지수는 가장 지역적인 소재가 어떻게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훈장과도 같습니다.

3. 개인적인 평가: 흙을 덮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40대가 되고 보니 영화 속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보다 그 뒤에 숨겨진 서사와 인물들의 책임감에 마음이 머뭅니다. 저에게 <파묘>는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역사에 대한 사죄이자, 후손으로서 이 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숙제였습니다.

로튼토마토의 높은 신선도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제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촌스럽다고 치부될 수 있는 소재를 이토록 세련되고 뜨겁게 풀어낸 감독의 뚝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낡은 일기장을 덮듯 영화의 엔딩을 마주하며, 저는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어떤 응어리 하나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이토록 정직하게 우리 땅의 냄새를 맡게 해준 영화를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관람이었습니다.

파묘 영화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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