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리뷰 : 퇴마록(2025)

by 호피뇽 2026. 1. 21.
반응형

영화 퇴마록(2025) : 다시 만난 우리들의 영웅

1. 영화 줄거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운명의 사투

창밖으로 차가운 비가 내릴 때면 가끔 낡은 종이책의 냄새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2025년, 드디어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태어난 <퇴마록>은 우리 세대가 사랑했던 '국내편'의 시작점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그려냅니다. 이야기는 비극적인 사고로 가족을 잃고 기공을 수련하게 된 ‘현암’이 박 신부와 조우하며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죠. 원작의 방대한 서사 중에서도 네 명의 퇴마사가 운명적으로 한 팀이 되어가는 과정을 아주 밀도 있게 다룹니다.

이번 애니메이션은 악의 근원인 교주에 맞서 세상을 구하려는 그들의 처절한 싸움을 보여줍니다. 염력을 사용하는 승희의 고뇌와 영특한 준후의 활약이 3D 기술을 입고 화려하게 펼쳐지는데, 텍스트로만 상상하던 그 기술들이 눈앞에서 구현될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괴물을 물리치는 액션물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대안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세기말의 우울함 대신 2025년의 감성으로 재해석된 서울의 배경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익숙한 그리움을 자아냅니다.

2. 영화 제작 비하인드: 6년의 기다림, AI 대신 장인 정신을 택하다

이 영화가 나오기까지 무려 6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제작사 로커스 스튜디오는 <레드슈즈>로 쌓은 기술력을 이 작품에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비하인드는 최근 유행하는 AI 기술을 제작 공정에서 철저히 배제했다는 점입니다. 680여 명의 제작진이 직접 손으로 다듬고 렌더링하며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냈죠. 원작자인 이우혁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에 참여해 원작의 뼈대를 지키면서도 세련된 연출을 더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고 합니다.

재밌는 점은 캐릭터 디자인의 변화입니다. 박 신부님께 수염을 그려 넣어 좀 더 현대적이고 강인한 이미지를 연출했는데, 이게 의외로 요즘 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처음엔 4부작 시리즈물로 기획되었다가 극장판으로 변경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장면이 편집되어 아쉬움도 남지만, 한국의 산세와 사찰의 문양 하나하나를 실사처럼 구현하기 위해 현장 스케치를 다녔다는 제작진의 노고는 화면 곳곳에서 빛이 납니다. 비록 해외 지표인 로튼토마토 지수는 아직 형성 중이지만, 한국형 오컬트의 저력을 보여주기엔 충분한 도전이었습니다.

3. 개인적인 평가: 서툴렀던 청춘에게 보내는 뒤늦은 답장

40대에 접어들어 스크린으로 마주한 퇴마사들은 이제 제 친구 같기도, 혹은 지켜주고 싶은 동생들 같기도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방대한 원작을 85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담다 보니 전개가 다소 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더군요. 그것은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감동이라기보다, 이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치열하게 살아온 제 지난 세월에 대한 위로였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점수는 '신선도 100%'를 주고 싶어요.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작화가 주는 온기는 대체할 수 없으니까요. 90년대 하이텔 창에서 한 줄 한 줄 내려 읽던 그 소녀가 이제는 누군가의 어머니로, 혹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다시 만난 퇴마록은 단순한 애니메이션 이상의 의미입니다. "내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거지"라는 대사가 유독 가슴에 남네요. 완벽하지 않아서 더 애착이 가는, 낡은 비디오테이프 같은 이 영화를 저는 앞으로도 가끔 꺼내 보며 그 시절의 나를 위로하고 싶습니다.

퇴마록 영화 포스터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