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킹덤 1 (신선도 91%) 기괴한 병원 판타지
영화 줄거리 - 코펜하겐 대형 병원에 서린 고대의 원혼과 비밀
덴마크 최고의 현대식 병원 '리그스 호스피탈'. 하지만 그 번듯한 콘크리트 아래엔 과거 늪지대였던 시절의 원혼들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영매 기질이 있는 노부인 드루세 할머니가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들려오는 소녀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면서 시작돼요. 과학과 이성이 지배해야 할 대학 병원에서 유령이 출몰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핵심이죠.
스웨덴에서 온 오만한 의사 헬머는 덴마크인들을 경멸하며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에 급급하고, 지하실의 설거지 담당자들은 마치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괴한 일들을 예언하듯 읊조립니다. 죽은 자들이 산 자의 영역을 침범하고, 급기야 한 의사는 연구를 위해 자신의 몸에 암세포를 이식하는 광기까지 보여주죠. 안개 자욱한 황갈색 화면 속에서 병원은 서서히 미쳐가고, 우리는 그 속에서 인간의 오만이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영화 제작 비하인드 - 거친 입자와 흔들리는 화면, 도그마 원칙의 전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들 당시, 그는 일종의 '장난' 혹은 '실험'을 하고 싶었다고 해요. 완벽한 미장센을 추구하던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나, 핸드헬드 카메라로 흔들리듯 찍어내는 '도그마 95' 원칙의 초기 숨결이 느껴지는 대목이 많죠. 특히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그 독특한 구리색(Sepia) 톤은 후보정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입혀진 것인데, 덕분에 병원이라는 공간이 마치 부패해가는 생명체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재미있는 건, 감독 본인이 매 에피소드 끝에 턱시도를 입고 등장해 시청자에게 직접 말을 건넨다는 점이에요. "선과 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며 능청을 떨던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은 참 도발적이었죠. 실제 덴마크의 국립병원을 배경으로 촬영했기에 현지인들에게는 공포가 더 실감 났다고 하더군요.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기괴한 특수효과와 기형적인 서사는 이후 전 세계 수많은 창작자에게 '메디컬 호러'라는 새로운 영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개인적인 평가 - 기괴함과 블랙 코미디가 결합된 독보적인 공포물
20대 시절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기억나네요. '엄청나게 기분 나쁜 공포물' 이라고 여겨져서 일까요. 최근 다시 마주한 킹덤은 지독하게 슬프고도 냉소적인 인간 찬가처럼 느껴집니다. 첨단 의료 장비로 무장했으면서도 정작 인간 영혼의 공허함은 치료하지 못하는 현대 의학에 대한 조롱이 읽혔거든요. 드루세 할머니가 유령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병원을 헤매는 모습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잊고 지낸 '위로'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영화 속 기괴한 유머들은 때로 헛웃음을 유발하지만, 그 끝에 남는 서늘함은 오래도록 가슴에 머뭅니다. 어릴 적 보던 정통 호러와는 결이 다른, 인간의 잠재의식을 긁어내는 듯한 불쾌한 매력이라고 할까요? 라스 폰 트리에 특유의 뒤틀린 세계관이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날카롭게 빛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봐도 헬머 의사가 옥상에서 "덴마크 놈들!"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속이 다 시원하면서도 씁쓸하네요. 우리네 삶도 어쩌면 저 거대한 병동 안에서 길을 잃은 영혼들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