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RT 93%)
수많은 '나'를 마주하며 깨닫는 지금의 소중함
미국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고단한 이민자의 삶을 사는 에블린. 그녀의 하루는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영수증 뭉치와 세무조사, 속을 썩이는 딸 조이, 그리고 이혼 서류를 내미는 남편 웨이먼드까지 그야말로 엉망진창입니다. 어릴 적 꿈꿨던 화려한 미래는 간데없고, 매일 아침 거울 속엔 지친 기색 역력한 중년 여성이 서 있을 뿐이죠. 그런데 국세청에서 마주한 남편이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며 믿기 힘든 말을 건냅니다. "멀티버스에 거대한 위협이 닥쳤고, 당신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요. 에블린은 혼란에 빠지지만 곧 '버스 점프'를 통해 수많은 평행우주 속 또 다른 자신들을 만납니다. 화려한 무술가, 성공한 가수, 심지어 손가락이 핫도그인 세계의 나까지. 에블린은 수많은 삶의 가능성을 마주하며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길들에 대한 미련과 후회를 목도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우주의 중심에는 증오로 변해버린 딸 조이가 있었고, 그녀는 우주를 파괴하려는 '조부 투파키'가 된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평범한 세탁소 아줌마가 전 우주적인 영웅이 되는 과정은 그 어떤 히어로 영화보다 뭉클한 전율을 선사합니다.
저예산으로 구현한 압도적 상상력의 멀티버스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기 전, 제작 환경은 무척이나 소박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흔히 말하는 '블록버스터'급 예산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비용으로 이토록 환상적인 멀티버스를 구현해냈거든요. 놀랍게도 영화의 시각효과(VFX) 팀은 전문 대형 업체가 아니라, 독학으로 기술을 익힌 단 5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유튜브 강의를 보며 기술을 연마하고, 집에서 사용하는 노트북을 활용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화려한 연출을 완성했습니다. 대형 자본이 주는 매끄러움 대신 창의력과 열정으로 빚어낸 거친 에너지가 영화 곳곳에서 숨 쉬고 있죠. 배우 양자경의 캐스팅 비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원래 각본은 성룡을 염두에 두고 쓰였지만, 그가 거절하자 감독 '다니엘스' 콤비는 주인공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꿨습니다.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죠. 40대 여성이 짊어진 돌봄의 무게와 경력 단절 같은 현실적인 소재가 SF와 만나 폭발적인 시너지를 냈으니까요. 또한 남편 역의 키 호이 콴은 20년 넘게 배우 활동을 중단했다가 이 영화로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영화 밖 현실에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적은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몸소 증명해낸 셈이라 더 감동적입니다.
다정함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수 있다는 증명
마흔을 넘기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만약'이라는 상자를 품고 살잖아요. '그때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같은 부질없는 가정들 말이에요. 영화는 그런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과 함께 따뜻한 포옹을 건냅니다. "실패한 내 모습조차 수많은 나 중 하나이며, 지금 이 순간의 지루한 일상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기적"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특히 에블린과 조이가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 대화를 나누는 정막한 장면에서는 이상하게도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화려한 멀티버스의 끝에서 남편 웨이먼드가 건네는 말, "친절을 베풀어줘, 특히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라는 대사는 제 삶의 모토가 되었습니다. 자극적이고 빠른 세상 속에서 다정함이 얼마나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이 영화는 투박하지만 진실하게 보여줍니다. 나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아 서글퍼지는 날에 꼭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작품이에요. 로튼토마토 지수 93%라는 숫자도 인상적이지만, 상처 입은 영혼들을 어루만지는 영화의 깊은 진심을 볼수 있을니다. 인생의 중반부에서 길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