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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by 호피뇽 2026.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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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 로튼 91%의 환상적인 무협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 로튼 91%의 환상적인 무협


01. 과거를 등진 아들이 마주한 아버지의 거대한 그림자

영화의 서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션'이라는 이름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남자의 일상에서 시작됩니다. 발렛 파킹 일을 하며 친구 케이티와 노래방을 전전하던 그의 정체는 사실 전설적인 조직 '텐 링즈'의 수장 웬우의 아들 샹치였죠. 어느 날, 평화롭던 버스 안에서 자객들의 습격을 받으며 샹치는 10년 동안 외면해왔던 자신의 잔혹한 과거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의 고향이자 신비로운 땅 '탈로'를 지키고, 광기에 사로잡힌 아버지를 막기 위해 여동생 샤링과 함께 험난한 여정에 오릅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물을 넘어 제 마음을 흔든 건, 그 속에 담긴 '가족의 비극' 때문이었습니다. 불멸의 삶을 살던 웬우가 사랑을 잃고 무너져 내리는 과정, 그리고 그 상처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자녀들의 모습은 마치 고전 비극을 보는 듯한 묵직함을 줍니다. 화려한 텐 링즈의 불빛 뒤에 가려진 고독한 소년의 성장통과, 어머니의 부드러움과 아버지의 강인함을 동시에 수용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샹치의 각성은 관객들에게 깊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단순히 치고받는 싸움이 아니라, 손끝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어 보내는 무협의 정서가 마블이라는 현대적 캔버스 위에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02. 할리우드에서 재현된 동양 무협의 정수와 비하인드

이 영화가 로튼토마토 91%라는 놀라운 신선도를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제작진의 집요한 장인 정신에 있습니다. 감독 데스틴 다니엘 크리튼은 성룡 영화의 리드미컬한 액션과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이 가졌던 서정적인 미장센을 결합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초반부 웬우와 리가 대나무 숲에서 나누는 대결은 '전투'라기보다 '구애의 춤'에 가깝게 연출되었는데, 이는 무술 감독이었던 고(故) 브래드 알란의 유작이기도 하여 팬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캐스팅에 얽힌 뒷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주연인 시무 리우는 과거 트위터를 통해 마블에 "샹치 역에 나를 써보는 건 어떠냐"고 농담 섞인 제안을 했던 무명 배우였지만, 결국 운명처럼 그 기회를 거머쥐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세대의 영원한 우상, 양조위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죠. 제작진은 웬우를 단순한 악당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고, 양조위는 그 특유의 깊고 서글픈 눈빛으로 서사에 개연성을 부여했습니다. 촬영 당시 시무 리우는 양조위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대사를 잊을 뻔했다는 귀여운 일화도 전해집니다. 이처럼 신구 배우들의 조화와 무협에 대한 존경심이 모여 마블 역사상 가장 독특한 질감의 영화가 탄생했습니다.

03. 40대 언니가 본, 상처 입은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

어릴 적 주말 아침마다 TV에서 해주던 홍콩 영화를 보고 자란 저에게 이 작품은 향수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마흔을 넘긴 지금, 제 눈에 들어온 건 샹치의 화려한 권법보다 아버지 웬우의 뒷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시간이 멈춰버린 그 남자의 집착이 얼마나 위태롭고 슬픈 것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거든요. 부모와 자식 사이의 끊어낼 수 없는 유대와 그로 인한 상처, 그리고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거나 혹은 넘어서야만 하는 삶의 숙명이 스크린 가득 넘쳐납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문득 제 부모님 생각도 났고, 저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텐 링즈'를 손에 쥐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보게 되더군요. 삶은 때로 탈로로 향하는 미로처럼 복잡하고 험난하지만, 결국 나를 구원하는 건 내 안의 빛과 어둠을 모두 껴안는 용기라는 것을 영화는 말해줍니다. 뻔한 히어로물이라고 치부하기엔 그 정서적 깊이가 상당해서, 동네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 한잔하며 수다 떨고 싶어지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화려한 CG에 눈이 즐겁고, 양조위의 눈빛에 마음이 저리고, 마지막엔 묘한 위로까지 얻었으니 이 정도면 최고의 주말 극장 나들이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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