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발레리나 : 로튼토마토 83%의 서늘한 복수극
01. 단 하나의 친구를 위해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여자
영화의 서사는 차갑고도 건조합니다. 전직 경호원 출신인 옥주는 세상에 미련 없는 듯 무채색의 삶을 살아가지만, 유일하게 숨을 쉬게 해주는 존재가 있죠. 바로 발레리나인 친구 민희입니다. 하지만 민희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며 옥주에게 잔인하고도 간절한 복수를 부탁하는 편지를 남깁니다. 민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파렴치한 '최프로'를 찾아내기 위해 옥주는 봉인해두었던 살인 병기로서의 본능을 다시 깨우기 시작합니다.
줄거리는 복잡한 반전보다는 직선적인 쾌감을 쫓아갑니다. 하지만 그 직선 위에 놓인 감정의 결은 꽤나 섬세하죠. 옥주가 민희의 방에서 그녀의 흔적을 더듬으며 슬픔을 억누르는 장면은, 복수가 단순히 분노 때문이 아니라 깊은 상실감에서 기인했음을 보여줍니다. 화려한 조명과 감각적인 색감 속에서 펼쳐지는 처절한 사투는 마치 한 편의 잔혹한 발레 공연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친구를 지키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거대한 불길이 되어 악인들을 집어삼키는 과정은 관객들에게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02. 이충현과 전종서, 그리고 그레이가 만든 탐미적 뒷이야기
제작 비하인드를 살펴보면 이 영화가 왜 이토록 감각적인 영상미를 자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콜>을 통해 독보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이충현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이자 실제 연인인 전종서 배우가 다시 호흡을 맞춘 작품이라는 점부터가 큰 기대를 모았죠. 감독은 전종서라는 배우가 가진 날 것 그대로의 눈빛을 극대화하기 위해 조명과 촬영 구도를 세심하게 설계했습니다. 특히 기존의 한국 액션 영화들이 투박한 현실감을 강조했다면, 이 작품은 뮤직비디오나 화보를 보는 듯한 힙(Hip)한 감성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아티스트 그레이(GRAY)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액션의 비트에 맞춰 리듬감 있게 배치된 트렌디한 사운드 트랙은 영화의 세련미를 한층 끌어올렸죠. 촬영 현장에서 전종서 배우는 고난도의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 체력 훈련에 매진하면서도, 민희에 대한 애틋한 감정선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제작진은 복수의 대상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응징하는 것을 넘어, 시각적으로 무너뜨리는 미학적인 쾌감을 주고자 세트장 디자인에 공을 들였습니다. 이러한 과감한 시도들이 모여 로튼토마토 83%라는 긍정적인 지수를 이끌어내며 글로벌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03. 40대 여자의 마음을 울린, 차갑고 외로운 연대
어릴 적 비디오 대여점에서 보던 복수극들은 대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거친 숨소리와 투박한 주먹다짐이 주를 이뤘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마흔을 넘긴 지금, 여성들이 서로를 구원하고 연대하는 이 차가운 액션 영화를 보며 시대가 변했음을 새삼 느낍니다. 옥주가 총을 들고 최프로의 소굴로 들어갈 때, 저는 그녀의 용기보다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에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내 목숨을 건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 사랑의 형태인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화려한 색감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인물들의 공허함을 부각시키는 듯했습니다. 세상을 다 아는 척하며 살아가는 우리 40대 어른들에게도 가슴 속 깊은 곳엔 민희처럼 소중했던 꿈이나 친구의 기억이 하나쯤은 남아있지 않나요? 옥주가 불타오르는 복수를 마치고 다시 차에 올랐을 때,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허무함과 안도감이 제 마음속에도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잘 가, 나의 발레리나"라고 속삭이는 듯한 엔딩은,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서글픈 위로처럼 다가왔습니다. 스타일리시한 겉모습 속에 뜨거운 진심을 숨긴, 꽤나 매력적인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