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리뷰 : 문라이트

by 호피뇽 2026. 1. 7.
반응형

 

 

영화 문라이트, 푸른 달빛 속 나를 찾아서 (로튼 98%)

1. 영화 줄거리 - 세 개의 이름, 그리고 단 하나의 소년

영화광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 동안 수만 개의 프레임을 마주했지만, 이토록 시리도록 아름다운 '푸름'은 처음이었습니다. <문라이트>는 마이애미의 거친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한 흑인 소년의 삶을 '리틀', '샤이론', '블랙'이라는 세 가지 이름으로 나누어 비춥니다. 어린 시절의 그는 그저 작고 유약한 아이였고, 사춘기 시절엔 정체성의 혼란 속에 침묵을 선택한 소년이었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단단한 근육 뒤에 진심을 숨긴 외로운 남자였죠. 줄거리는 겉보기에 평범한 성장담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약에 찌든 어머니와 학교 폭력, 그리고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동성(同性)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40대가 되어 다시 이 영화를 보니, 주인공이 느끼는 그 지독한 고독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자꾸만 목이 메더군요. 특히 어린 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쳐주던 후안이 "달빛 아래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인단다"라고 말하던 장면은, 이 삭막한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웅장한 사건은 없어요. 하지만 바닷가에서 나눈 짧은 입맞춤, 성인이 되어 재회한 친구가 차려준 소박한 요리 한 접시가 주는 무게감이 그 어떤 액션 영화보다 강렬했습니다. 침묵이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줄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네요.


2. 영화 제작 비하인드 - 기적 같은 예산으로 일궈낸 오스카의 영광

영화 제작 비하인드를 들여다보면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온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배리 젠킨스 감독은 단돈 150만 달러라는,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껌값'에 가까운 예산으로 이 걸작을 빚어냈거든요. 촬영 기간도 단 25일뿐이었다니 믿어지시나요? 게다가 흥미로운 건 세 명의 주인공(아역, 청소년, 성인)이 서로 촬영 중에 만나지 못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다른 배우의 연기를 흉내 내기보다는, 각 시기마다 느끼는 고유한 감정에만 집중하길 바랐던 감독의 철학 때문이었죠. 덕분에 우리는 인물은 같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그 미묘한 눈빛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는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 사건이죠. '라라랜드'로 잘못 발표되었다가 정정되었던 그 소동 말이에요. 당시 저는 TV 앞에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해프닝보다 더 중요한 건, 화려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상식에서 이토록 작고 내밀한 이야기가 작품상을 거머쥐었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인종과 성별을 떠나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시적인 영상미로 풀어낸 제작진의 뚝심이 결국 통했다는 증거겠죠. 화려한 CG나 스타 배우 없이도 진심을 담은 카메라 렌즈 하나가 세상을 얼마나 크게 뒤흔들 수 있는지, 이 영화는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3. 개인적인 평가 - 내 안의 푸른 아이를 위로하며

제 인생의 절반을 넘긴 지금, <문라이트>는 저에게 단순한 감상용 영화를 넘어선 치유의 기록입니다. 로튼토마토 지수 98%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보여주듯 이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는 흠잡을 데 없지만, 제 개인적인 평가는 그보다 훨씬 주관적인 곳에 머뭅니다. 우리 모두에겐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혹은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은 '어두운 방' 하나쯤은 있잖아요? 샤이론의 무거운 침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제 어린 시절의 서툴렀던 고민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지만 차마 손을 내밀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 말이에요. 영화의 마지막, 다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가 달빛 비치는 바다를 바라보던 뒷모습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인생의 정답은 없지만, 적어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40대의 길목에서 여전히 정체성을 고민하는 동년배들에게, 그리고 이제 막 자신의 파란색을 찾아가는 청춘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습니다. "너는 누구니?(Who is you?)"라는 작중 대사가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네요. 세월이 흘러도 변색되지 않을, 푸른 달빛 같은 이 영화를 제 인생의 리스트 상단에 소중히 올려둡니다.

 

 

영화 문라이트 관련 이미지. this is the story of a lifetim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