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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기생충

by 호피뇽 2026.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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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RT 99%) - 선을 넘는 우리들의 슬픈 초상

지하실에서 시작된 공생과 생의 뒤엉킴

비 내리는 오후, 반지하 창밖으로 보이는 취객의 모습조차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기택네 가족을 만납니다. 온 가족이 백수지만 사이만큼은 돈독한 이들에게 어느 날 '희망'이라는 이름의 기회가 찾아오죠. 장남 기우가 명문대생 친구의 소개로 IT 기업 CEO인 박 사장네 고액 과외 면접을 보러 가게 된 거예요. 위조된 재학 증명서를 들고 언덕 위 대저택으로 향하는 기우의 발걸음은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합니다. 마치 다른 세상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박 사장의 집, 그곳의 안주인 연교는 순진하리만큼 사람을 잘 믿었고, 이를 틈타 기우의 가족들은 하나둘씩 정체를 숨긴 채 이 저택의 일원으로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기택은 운전기사로, 기정은 미술 치료사로, 충숙은 가정부로 입성하며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완벽한 '기생'이 완성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가 안도할 틈을 주지 않아요. 원래 그곳에 있던 이들과의 예기치 못한 충돌,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폭우는 화려한 저택 아래 숨겨져 있던 비극의 민낯을 가차 없이 드러냅니다. 계단을 타고 아래로, 더 아래로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그들의 희망도 씻겨 내려가는 그 순간, 관객인 저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가난한 자와 부자의 대결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서로의 목을 겨눠야 하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풍경이 스크린 가득 펼쳐집니다.

 

칸와 아카데미를 매료시킨 봉테일

봉준호 감독님의 세심함, 이른바 '봉테일'의 마법은 이 영화의 공간에서 빛을 발합니다. 영화 속 박 사장의 저택이 실제 집이 아닌 전주에 지어진 거대한 세트장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거실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정원은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감독님이 구상한 '햇살의 각도'에 맞춰 설계되었다고 해요. 반면 기택네 반지하 동네는 실제 재개발 구역의 소품들을 공수해와 먼지 한 톨까지 재현해냈죠. 촬영 당시 동네 주민들이 "언제 우리 동네가 이렇게 깨끗해졌냐"며 웃지 못할 농담을 던졌을 정도로 사실감이 넘쳤습니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는 아역 배우를 향한 배려예요. 박 사장네 막내 다송이가 귀신을 보고 놀라는 장면을 위해 봉 감독님은 블루 스크린을 활용해 배우들의 연기 동선을 분리했습니다. 아이가 공포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면서도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낸 것이죠. 또한,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짜파구리' 장면 역시 빈부격차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였습니다. 서민적인 음식에 값비싼 채끝살을 얹는 그 부조리한 설정은 대사 한 마디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런 디테일들이 모여 로튼토마토 99%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만들어낸 것 아닐까 싶네요.

 

웃음끝에 남는 차가운 현실의 씁쓸한 여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는데, 왠지 모를 씁쓸함에 한참 동안 하늘만 바라봤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 심부름으로 가던 골목길의 냄새, 반지하 특유의 그 눅눅한 공기가 영화 내내 제 코끝을 스치는 것 같았거든요. 박 사장이 무심코 내뱉은 "선을 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나, 기택의 몸에서 나는 "지하철 타는 사람 특유의 냄새"라는 표현은 가슴 한구석을 송곳처럼 찔렀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기생하며 살아가고, 동시에 누군가를 밀어내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애쓰는 존재들이니까요. 40대가 되어 다시 마주한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지독한 현실을 투영한 거울 같았습니다. "가장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야"라고 허탈하게 웃던 기택의 얼굴에서, 치열한 삶을 버텨온 우리들의 그림자를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기우가 마지막에 아버지를 구하겠다며 다짐하는 그 막연한 약속이, 마치 이루어지지 않을 꿈처럼 느껴져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대단 이유는,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들기 때문이겠죠. 한국 영화의 자부심을 넘어,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안겨준 인상깊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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